2013년 6월 14일 금요일
하나님께 축복 받는 올바른 예배는??? [안상홍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교회에서만이 ......]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하늘에서 죄를 짓고 쫒겨온 죄인들입니다.
그렇기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만 죄사함을 얻을 수 있고 다시 천국에 갈 수 있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죄사함을 간구하고 축복을 받아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기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가장 중대한 의무 중 하나를 꼽으라 한다면 바로 예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각 교단에 따라 예배일이 다르다. 이를 크게 나누어 보면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교단과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교단이 있다. 과연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어느 날에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교리비교를 통해 알아보자.
일요일 예배
① 근거
일요일 예배를 드리는 자들의 주장 중 가장 많은 교인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 ‘부활과 성령 강림이 이루어진 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에 일요일에 예배한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성경에 없다. 성경 어디에도 ‘부활과 성령 강림이 일요일에 있었으니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신 구절이 없다. 이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인 부활절은 일요일이 맞다. 예수님께서 이른비 성령을 내려주신 오순절도 일요일이다. 그래서 일요일에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합리화를 위해 이 모든 날들을 증거로 들면서 일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주마다 지켜야 하는 예배일은 연중에 지키는 예배일과는 다르다. 이는 마치 광복절과 삼일절에 모두 만세운동을 했으니 두 기념일을 합쳐 주마다 기념일을 만들어 지키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주장으로는 ‘초대교회가 일요일에 예배하고 연보했다’는 증거로 고린도전서 16장 2절 말씀을 내밀고 있다.
매 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고린도전서 16:2)
매 주일 첫날은 일요일이다. 일요일 예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 구절을 들고서 ‘초대교회 사도들도 일요일에 예배를 드렸다’라고 하는 것은 앞뒤 문맥을 이해 못하는 무지의 소치다. 만약 이 구절을 일요일 예배와 연관시키려면 ‘연보를 하게 하라’로 성경 말씀을 바꾸어야 한다. 이 말씀의 정황은 바로 뒤에 나오는 3절 말씀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고린도전서 16:3)
이 연보는 매주 드리는 예배의 연보가 아닌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특별헌금이다. 게다가 ‘일요일에 이익을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라’고 하신 것은 오히려 첫날에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일요일에 일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일요일 예배 성수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없다. 성경에서는 일요일에 예배를 드렸다는 증거를 어디에서도 살펴볼 수 없다. 일요일 예배에 대한 근거는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만 그 자료를 찾을 수 있다.
교회사(이건사 발행, 송낙원 지음) 101쪽, ‘제2기 사도 후 시대(100-313년)’의 내용을 살펴보면 ‘예배의 시기로는 주(週) 예배로서 안식일 예배가 이 시기까지 계속되었으나, 말기에 점차로 주의 첫날 즉 일요일로 대용케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다른 교회사(세종문화사 발행, 김의환 박사 감수) 145쪽에는 ‘콘스탄틴 대제는 처음으로 칙령을 내려 일요일에 정무와 사법의 일을 쉬게 하고 이어서 이날에는 군대의 조련, 공연물의 관람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구약의 안식일의 제도를 그대로 옮기려고 하지는 않았다. 동방에 있어서는 토요일을 안식일로서 지켰다’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처럼 일요일 예배는 AD 150년경부터 그리스도인들이 이교도화되면서 점차 교회에 들어왔다. 그러므로 일요일 예배를 지키는 자들은 어떻게든 성경과 연관 짓기 위해 여러 가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
② 교단
일요일 예배를 드리는 교단들에는 대표적으로 천주교가 있으며 개신교 5대 교파와 여호와의증인,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몰몬교), 통일교, 신천지 등이 있다.
③ 결론
일요일 예배는 2세기경 로마교회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예배일을 일요일로 변경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핍박받던 기독교의 역사적 배경과 유대인과의 마찰, 로마의 정세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해 일요일 예배가 정착화됐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에는 일요일 예배에 대한 명백한 구절을 찾아볼 수 없다(교부들의 신앙 61쪽, 카톨릭출판사)”는 것이다.
안식일 예배
① 근거
안식일 예배의 근거는 성경이다. 하나님께서 육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 안식하신 것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인 안식일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지키라 하셨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세기 2:1~3)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애굽기 20:8~11)
일곱째 날 안식일은 오늘날의 요일제도에서는 토요일에 해당하며 구약시대부터 신약시대에 이르기까지 수세기 동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통해 지켜져 왔다. 신구약 성경에서는 135개의 구절 속에서 안식일을 언급하며 기억해 지키라고 기록하고 있다.
② 교단
토요일에 안식일을 지키는 교단으로는 전 세계 두 개의 교단이 있다. 먼저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이며 또 다른 교단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다. 하지만 안식교는 이른바 ‘일몰설’을 주장하며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지키고 있어 이 또한 온전히 안식일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일몰설은 성경을 그릇되게 해석하므로 나타난 주장이다. 그러므로 전 세계를 통틀어 오로지 성경대로 안식일을 지키는 교단은 하나님의교회가 유일하다.
③ 결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는 본을 보여주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성도라면 누구든지 안식일을 지켜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15)
사람의 어떤 생각도, 사람의 어떤 변명도, 사람들의 어떤 자기 합리화도 하나님의 계명을 뛰어 넘을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계명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 의무다.
2013년 6월 5일 수요일
하나님은 두분이다
하나님은 두분이다
지구별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은 한분이시다라고 알고 있다.
또한 한분 하나님에 대해서는 남자 형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증거 하고 있지 않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은 두 분이다"라고 증거하고 있다.
성경에서 증거하는 두분 하나님 에 대해 살펴보자.
성경은 심해와 같다. 깊고 오묘한 수수께끼의 연속이다.
수수께끼는 성경 첫 장부터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우리’라는 하나님이다. 아니, ‘하나님들’이다.
구약성경의 원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성경에는 ‘하나님’이 복수명사 ‘אֱלֹהִים (엘로힘)’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들’로 해석되는 이 표현은 구약성경 39권에 걸쳐 2500회 이상 등장한다.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라는 뜻이다. ‘엘로힘’이라는 이 수수께끼 같은 단어 속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하나님들,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사람의 형상을 통해 당신을 왜 복수의 하나님으로 표현했는지 알려주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 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모델로 하여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이는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과 여성적 형상의 하나님 두 분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두 분의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이뿐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사역을 하시며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 속에서도 한 분이 아닌 두 분, 즉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성경은 온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항상 두 분의 하나님이 역사하셨음을 ‘엘로힘’과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 증거하고 있다.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1:1~7)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 6:8)
오만한 인간들의 바벨탑 건설을 중단시키시는 역사를 행하시는 분도 두 분이다. 복음을 전할 사람들을 찾으시는 분도 한 분이 아니다. 이는 구원의 역사를 이끄시는 하나님이 늘 두 분이 존재했다는 증거다
. 바로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다.
하늘 가족의 대표, 아버지 하나님
대개는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요한복음 8:41)”,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에베소서 4:5~6)” 하신 말씀을 인용하며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자세히 연구해보면 아버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뜻이지, 하나님이 유일신이기 때문에 한 분만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이 한 분이시며
아버지 하나님은 유일하게 한 분이라는 말씀이다. 다른 어떤 신도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한 분뿐”이라고 하신 것은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아니다. 오
히려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반증이다.
하나님은 분명 두 분이신데, 성경은 왜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고 표현한 것일까. 이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갖고 계시는 대표성 때문
이다.
예를 들면,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을지라도 가족의 대표인 아버지의 이름만 적어 문패를 거는 이치와 같다. 누구나 아버지의 이름이 갖는 대표성 때문에 그 집에 아버지 혼자만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어머니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늘 가족에도 이처럼 대표자이신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고 어머니 하나님이 계신다.
또 다른 예로, 아담과 하와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성경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기록되어 있다(로마서 5:12~19). 즉, 아담 한 사람이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고 죄를 지은 사람은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이었다. 죄를 지은 사람이 두 사람인데도 ‘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담이 갖는 대표성 때문이다. 이를 두고 하와는 죄를 짓지 않았
다고 해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하신 말씀을 “하나님은 한 분뿐”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성경을 단편적으로만 이해하여 곡해한 것이
다.
엘로힘, 성령과 신부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끄시는 장면은 성경 전반에 걸쳐 담겨 있다. 다음은 성경 마지막 장에 묘사된 두 분의 구원자에 대한 기록이다.
성령과 신부 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하나님께서 성령과 신부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구원을 베푸신다는 예언이다.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이다. 신부(bride)는 말 그대로 성령의 아내이니 ‘어머니 하나님’인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과 신부는
창조 시에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시며 인류를 창조하신 엘로힘, 즉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다.
어머니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시기 위해 마지막 성령시대에 이 땅에 오셨다. 잃어버린 자녀를 찾는 일은 아버지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자녀가 아버지의 사랑만 받는 것이 행복할까???
자녀가 아버지의 사랑도 받고 어머니의 사랑도 받는 것이 행복할까???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의 사랑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 받고 본향에 돌아가면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의 품안에서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피드 구독하기:
글 (At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