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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11일 목요일

성경의 증거하는 새언약안식일을 지키는 유일한교회 하나님의교회!!



성경에서는 하나님께 복받기 위해 예배드리는 날을 일곱째날 안식일로 알려주고 있다.
성경의 이런 가르침을 무시하고 오늘날의 수 많은 교회에서는 일요일 예배를 지키고 있다.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일요일 예배를 지키고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구원이 없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안식일을  2000년전의 방법 그대로 지키고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유일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교회인 것이다.

일요일 예배의 기원에  대해 살펴보자.



로마 카톨릭(천주교)의 일요일 예배는 공식적으로 321년에 시작됐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일요일 예배를 지키지 않았다. 성경에 일요일 예배에 대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요일 예배’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일요일 예배의 근원은 기원전 539년 세워진 페르시아제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페르시아인들은 원래 ‘불’을 숭배하는 민족이었다. 이들이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접하게 되면서 이곳의 여러 자연신들까지 숭배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은 이후 자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 그리스식 발음)에 의해 신학과 우주관을 갖춘 종교로 재조직됐다. 바로 ‘조로아스터교’다. 흔히 불을 숭배하는 종교라고 해서 배화교(拜火敎)라고 부른다.
조로아스터교는 ‘아후라 마즈다’를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것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그 안에는 여러 신들이 존재한다. 초기 전파 과정에서 여러 남신과 여신 등을 믿는 고대 토착 종교와 혼합되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인들은 아후라 마즈다를 최고의 신으로 꼽는 동시에, 그의 분신인 전쟁의 신이자 어둠을 몰아내는 ‘태양신’인 미트라를 열렬히 경배했다. 불에 대한 숭배가 태양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예배의식에도 잘 나타난다. 이들에게 태양과 불은 예식을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신자들은 불이 타오르는 제단 앞에서 동물이나 나무 막대기 헌주 등의 제물을 태워 바친다. 이때 생기는 불꽃과 냄새로 경배를 표현한 것이다. 이 때문에 조로아스터교인들은 가정에 화로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화로 앞에서 제사뿐 아니라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며 매일 기도를 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대상은 불이 아닌 태양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은 이 종교를 국교로 삼았던 사산 왕조의 금속주화 뒷면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들은 일요일을 태양신을 경배하는 성일로 간주했다. 일요일은 한 주간의 첫날로, 고대 바벨로니아인들이 숭배하던 태양을 비롯해 다섯 개의 별을 따라 한 주간의 각 날들에 명칭을 붙여 사용했는데, 일요일은 ‘태양(sun)의 날’에 해당했다. 이들에게 태양의 날, 태양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은 마땅한 일이었다.


미트라에 대한 경배는 페르시아를 넘어 그리스, 로마 제국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미트라는 전략적 요충지였던 소아시아 지역의 많은 로마 군인들에게 전쟁의 신으로 숭배받았다. 1세기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의 글이다.


"미트라(메흐르)교를 받아들인 첫 번째 사람들은 시실리해 인근에 살던 해적과 도둑떼였다. 이후에 이 해적들을 소탕한 로마 군인들이 미트라교를 알게 되었다. 이들은 로마제국 전역으로 미트라교를 전파했다. 이들 외에도 시리아 상인들과 군인들도 이 종교를 받아들인 그룹 중에 하나이다."


1세기경 로마 군인들이 믿기 시작한 미트라교는 이후 로마의 공식 종교가 될 정도로 그 세가 커졌다. 로마제국 전역에 미트라교의 신전인 미트라에움이 세워졌다. 특히 로마를 비롯해 누미디아, 달마티아, 브리타니아, 라인강 유역, 도나우강 유역에서 상당수 분포되었다. 급기야 미트라는 폼페이우스 황제(BC 106~48)의 동정(東征) 이후 로마제국의 수호신으로까지 격상되었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숭배했던 미트라는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 그 자리를 빼앗기는 듯 보였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신으로 믿는 기독교를 공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밀라노칙령을 내려 기독교를 공인해주었다.


표면적으로 기독교는 미트라교와의 경쟁에서 이긴 듯 보였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그와 반대였다. 유일신 하나님만을 믿으며 성경의 말씀에 따라 살았던 기독교인들은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그것은 세속화였다. 미트라교를 믿는 수많은 사람들을 유입시키기 위해서 기독교는 잡다한 이방종교의 절기와 의식을 끌어들였다. 처음에는 타의에 의해서였으나 나중에는 자의로 기독교를 변질시켜갔다. 가장 먼저 세속화된 건 예배일이었다. 321년 하나님의 주간절기인 일곱째 날 안식일이 사라지고 일요일 예배가 도입됐다. 태양신 미트라를 숭배하는 예배일, 일요일 예배가 기독교로 들어온 것이다.


321년 콘스탄틴이 일주간의 첫날을 휴일로 정했을 때 그는 그날을 “태양의 숭배일(Sunday)”이라고 명명했다. 결국 이방의 상징들이 없어졌을 때 그 불멸의 태양은 최후의 것이 되었다. (교회사 핸드북, 송광택 역, 생명의말씀사)

모든 재판관과 시민 그리고 기술자들은 존엄한 태양의 날에 쉬어야 한다. 그러나 시골 사람들은 방해받지 않고 농사일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종종 이날은 씨를 뿌리고 추수하기에 가장 알맞은 날이기 때문이다. 주후 321년 3월 7일 (콘스탄티누스의 칙령,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어떤 사람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을 했으며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생애 마지막까지 세례받기를 보류했으며, 미트라교의 대제사장의 칭호를 유지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절기인 안식일 대신 태양신 숭배일인 일요일을 선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교회사 핸드북의 기록처럼 그가 최후까지 남기를 바랬던 신은 하나님이 아닌 ‘불멸의 태양신’이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아닌 미트라신을 숭배하는 일요일 예배를 교회로 끌어들여왔다. 그리고 일요일 예배 유입을 기점으로 하나님의 절기가 아닌, 태양신 미트라와 연관된 다양한 절기와 의식들로 교회를 채우기 시작했다. 이처럼 기독교는 교묘하게 미트라교에 의해 잠식되어갔다.




2013년 6월 14일 금요일

하나님께 축복 받는 올바른 예배는??? [안상홍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교회에서만이 ......]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하늘에서 죄를 짓고 쫒겨온 죄인들입니다.
그렇기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만 죄사함을 얻을 수 있고 다시 천국에 갈 수 있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죄사함을 간구하고 축복을 받아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기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가장 중대한 의무 중 하나를 꼽으라 한다면 바로 예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각 교단에 따라 예배일이 다르다. 이를 크게 나누어 보면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교단과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교단이 있다. 과연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어느 날에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교리비교를 통해 알아보자.
일요일 예배
① 근거
 일요일 예배를 드리는 자들의 주장 중 가장 많은 교인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 ‘부활과 성령 강림이 이루어진 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에 일요일에 예배한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성경에 없다. 성경 어디에도 ‘부활과 성령 강림이 일요일에 있었으니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신 구절이 없다. 이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인 부활절은 일요일이 맞다. 예수님께서 이른비 성령을 내려주신 오순절도 일요일이다. 그래서 일요일에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합리화를 위해 이 모든 날들을 증거로 들면서 일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주마다 지켜야 하는 예배일은 연중에 지키는 예배일과는 다르다. 이는 마치 광복절과 삼일절에 모두 만세운동을 했으니 두 기념일을 합쳐 주마다 기념일을 만들어 지키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주장으로는 ‘초대교회가 일요일에 예배하고 연보했다’는 증거로 고린도전서 16장 2절 말씀을 내밀고 있다.

매 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고린도전서 16:2)

매 주일 첫날은 일요일이다. 일요일 예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 구절을 들고서 ‘초대교회 사도들도 일요일에 예배를 드렸다’라고 하는 것은 앞뒤 문맥을 이해 못하는 무지의 소치다. 만약 이 구절을 일요일 예배와 연관시키려면 ‘연보를 하게 하라’로 성경 말씀을 바꾸어야 한다. 이 말씀의 정황은 바로 뒤에 나오는 3절 말씀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고린도전서 16:3)

이 연보는 매주 드리는 예배의 연보가 아닌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특별헌금이다. 게다가 ‘일요일에 이익을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라’고 하신 것은 오히려 첫날에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일요일에 일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일요일 예배 성수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없다. 성경에서는 일요일에 예배를 드렸다는 증거를 어디에서도 살펴볼 수 없다. 일요일 예배에 대한 근거는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만 그 자료를 찾을 수 있다.

교회사(이건사 발행, 송낙원 지음) 101쪽, ‘제2기 사도 후 시대(100-313년)’의 내용을 살펴보면 ‘예배의 시기로는 주(週) 예배로서 안식일 예배가 이 시기까지 계속되었으나, 말기에 점차로 주의 첫날 즉 일요일로 대용케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다른 교회사(세종문화사 발행, 김의환 박사 감수) 145쪽에는 ‘콘스탄틴 대제는 처음으로 칙령을 내려 일요일에 정무와 사법의 일을 쉬게 하고 이어서 이날에는 군대의 조련, 공연물의 관람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구약의 안식일의 제도를 그대로 옮기려고 하지는 않았다. 동방에 있어서는 토요일을 안식일로서 지켰다’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처럼 일요일 예배는 AD 150년경부터 그리스도인들이 이교도화되면서 점차 교회에 들어왔다. 그러므로 일요일 예배를 지키는 자들은 어떻게든 성경과 연관 짓기 위해 여러 가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

② 교단
 일요일 예배를 드리는 교단들에는 대표적으로 천주교가 있으며 개신교 5대 교파와 여호와의증인,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몰몬교), 통일교, 신천지 등이 있다.

③ 결론
 일요일 예배는 2세기경 로마교회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예배일을 일요일로 변경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핍박받던 기독교의 역사적 배경과 유대인과의 마찰, 로마의 정세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해 일요일 예배가 정착화됐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에는 일요일 예배에 대한 명백한 구절을 찾아볼 수 없다(교부들의 신앙 61쪽, 카톨릭출판사)”는 것이다.
안식일 예배
① 근거
 안식일 예배의 근거는 성경이다. 하나님께서 육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 안식하신 것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인 안식일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지키라 하셨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세기 2:1~3)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애굽기 20:8~11)

일곱째 날 안식일은 오늘날의 요일제도에서는 토요일에 해당하며 구약시대부터 신약시대에 이르기까지 수세기 동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통해 지켜져 왔다. 신구약 성경에서는 135개의 구절 속에서 안식일을 언급하며 기억해 지키라고 기록하고 있다.

② 교단
 토요일에 안식일을 지키는 교단으로는 전 세계 두 개의 교단이 있다. 먼저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이며 또 다른 교단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다. 하지만 안식교는 이른바 ‘일몰설’을 주장하며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지키고 있어 이 또한 온전히 안식일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일몰설은 성경을 그릇되게 해석하므로 나타난 주장이다. 그러므로 전 세계를 통틀어 오로지 성경대로 안식일을 지키는 교단은 하나님의교회가 유일하다.

③ 결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는 본을 보여주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성도라면 누구든지 안식일을 지켜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15)

사람의 어떤 생각도, 사람의 어떤 변명도, 사람들의 어떤 자기 합리화도 하나님의 계명을 뛰어 넘을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계명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 의무다.

2013년 6월 10일 월요일

여성도들의 머리수건에 대한 하나님의 교회의 가르침은?????

거룩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도 사람들의 마음대로 드려서는 아니된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교회 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하나도 거스르지 않고 다 지키고 있다.
예배 때 남자와 여자는 예배보는 방법이 구분되어 있다.
여성도들은 머리를 가리고 남자 성도들은 머리를 절대 가려서는 아니된다.
그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살펴보고 오늘날 하나님의교회 가 아닌 다른 교회의 예배보는 방법이 잘못 되었음을 확인해보자.
사도 바울의 당부

고린도전서는 사도 중의 사도라 일컫는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다. 이 편지에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도로서 갖춰야 할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린도전서 1:1~3)

55년경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인사말을 시작으로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에게 긴 편지를 보냈다. 바울은 생애 동안 3차에 걸쳐 전도여행을 한 바 있는데, 이 편지를 쓴 것은 터키 남서쪽 해안에 위치한 에베소에서 3차 전도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간에 분쟁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로 추정된다(고린도전서 1:11).

고린도는 수년 전 2차 전도여행을 했던 곳이다. 교통수단이 변변치 않았던 당시로서는 아주 멀고도 험한 여정이었을 텐데도 결국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의 정점을 찍은 곳은 고린도였다.

당시 고린도는 그리스(헬라)의 대표적인 항구도시로 상업과 무역이 발달한 국제적 중심지였다. 반면 부도덕한 도시로도 유명했다. 이 도시에는 사랑의 여신이라 불리는 아프로디테를 숭배하는 거대한 사원이 있었는데, 이 사원에서 천 명가량의 여사제들이 매음을 행했다고 전해진다. 또,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도시 인구는 다양한 민족들이 섞여 있었다. 따라서 다양한 이방신 숭배사상이 유입되었고, 사람들의 삶은 배금주의와 향락주의에 젖어 있었다.

고린도 하나님의교회의 구성원 역시 이방인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신앙적으로, 도덕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일부 성도들로 인해 혼란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바울로서는 믿음이 약한 성도들이 퇴폐한 사회풍조와 헬라철학의 잡설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 퍽 염려스러웠을 것이다. 그의 편지에는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1장부터 10장까지 읽어보면,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각인시키며, 음행의 죄를 꾸짖고, 결혼에 대한 교훈과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를 함으로써 거룩한 성도로서의 본분을 가르치고 있다. 바울은 그 다음으로 11장에서는 강력하고 절실하게 어떤 문제를 다루고 있다.

비레타[biretta] 로마 가톨릭교회 성직자들이 착용하던 각진 모자
  비레타[biretta] 로마 가톨릭교회 성직자들이 착용하던 각진 모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고린도전서 11:1~3)

바울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바울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무슨 이야기를 꺼내고자 이렇게 조심스러울까. 선뜻 본론을 언급하지 못하고 고린도교회를 칭찬하며 꺼낸 이야기는 바로 다음 구절에 나타난다.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고린도전서 11:3~5)

요약하자면 예배나 기도드릴 때 남자는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말고,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쓰라는 말이다. 이 규례는 바울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다.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여성도는 머리수건을 쓰는 것, 남성도는 쓰지 않는 것. 어려운 규례가 아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반복적으로 혹은 역설적으로 여성도의 머리수건 규례를 언급하고 있다. 꼭 지켜져야 할 그리스도의 가르침인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아닌 양 치부해버릴까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많은 교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느 교회에서도 올바로 머리수건 규례를 지키는 곳이 없다. 여성도가 머리수건을 쓰는 천주교도 남자인 사제가 비레타(biretta, 각진 모자), 주케토(zucchetto, 이탈리아어로 ‘작은 바가지’라는 뜻으로 둥근 모자) 등을 쓰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는 어긋난다.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고 축복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배 시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거나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욕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바울은 역설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고 싶었던 바울의 당부는 오직 한 가지, 거룩함을 덧입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