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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26일 목요일

하나님이 명하신 절기를 지키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나팔을 불어 가을 절기를 준비하는 나팔절~~~


고대 시대 나팔은 중요한 수단이었다. 특히 전쟁에 있어 지휘와 명령 전달의 도구였던 나팔의 역할은 가장 중요했다. 통신 장비가 구비되어 있지 않았던 시기 공격과 후퇴, 출발, 멈춤, 대오 정렬, 무기 준비, 발사 등이 모두 나팔소리로 이루어졌다. 이외에도 성경에서는 더 다양한 나팔의 쓰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지파가 이동할 때 나팔을 불었다. 각 지파들의 소집과 해산 등이 나팔로 가능했으며 기쁠 때도 나팔을 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이유로 부는 나팔 중 성경에서 가장 중요시했던 나팔은 성력 7월 1일 나팔절에 불었던 나팔이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지켰던 가을절기의 시작을 알렸던 나팔절은 안도와 기쁨, 회개 등의 다양한 감정이 섞여 있다.


나팔절의 의미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이집트를 나온 후 처음 십계명을 받아 온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해주신 십계명의 두 돌판을 들고 내려오던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들의 배도를 목격했다. 하나님의 율법을 받기 위해 경건한 몸과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으리라 여겼던 모세는 백성들의 우상숭배를 보고 그 자리에서 십계명을 던져 깨뜨려버렸다. 그날 이스라엘 백성들 중 삼천 명가량이 죽었다.


그 후 모세는 백성들의 죄사함을 위해 진과 멀리 떨어진 곳에 회막을 치고 매일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날의 죄로 하나님께 버려질까 염려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회막에서 기도하는 모세를 보며 자신들의 죄를 뉘우쳤다. 귀걸이며 목걸이를 볼 때마다 금송아지를 만들며 휘청거리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너무도 어리석었던 그때를 돌아보며 몸에 지니고 있던 단장품들을 모두 제했다. 그들의 회개는 기약이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하나님께서 노를 거두시기만을 바랐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매일이 더 간절했다. 그렇게 40일이 흘렀다. 엄숙하고 조용한 가운데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모세를 부르셨다. 다시금 십계명을 허락해주신 것이다.


백성들은 이제야 안도했다. 그리고 기뻤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축복을 받는 다는 생각에 마음이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이제 열흘 후면 모세가 십계명을 가지고 내려올 것이다. 백성들은 처음의 잘못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그날을 기억하고 회개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려 나팔을 불었다. 길게 부는 나팔은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나팔이었다. 나팔을 불며 모세를 기다리던 백성들은 한 사람이라도 우상에 빠지지 않으려 애를 썼다. 이러한 모세의 행적을 따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팔절을 제정해주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를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레위기 23: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레위기 23:23~24)


나팔절은 가을절기의 대표되는 초막절 속에 들어간다. 초막절 안에는 나팔절과 대속죄일, 초막절이 편성돼 있다. 날짜도 성력 7월 한 달 안에 모두 들어 있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의 시작인 나팔절이 되면 예루살렘을 방문해왔다. 예수님께서도 초막절을 맞아 예루살렘에서 전도하신 것은 초막절뿐 아니라 초막절에 내포되어 있는 나팔절과 대속죄일도 함께 지키셨음을 알 수 있다.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한복음 7:2, 14, 37)


나팔절은 하나님께서 제정해주신 일곱 절기 가운데 다섯 번째 절기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절기다.

**** 하나님의 교회만이 성경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나팔을 불어  하나님 앞에 회개를 올리고 죄사함을 축복을 받고
         천국으로 나아갑니다.

2013년 6월 12일 수요일

하나님의 교회만이 구원이 있는 이유는 ???? [유월절]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베드로전서 1:9 )

영혼의 구원은 바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알아야만 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디모데전서 6:15~16)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생의 약속이 유월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예수님)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예수님)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 음료로다 (요한복음 6:53~55)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먹는 떡을 예수님의 살로, 유월절에 마시는 포도주를 예수님의 피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대로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유월절 떡)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유월절 포도주)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9~28)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 영생한다’ 하신 말씀에 따라 유월절을 지키는 자가 영생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반대로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하셨으니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다면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예수님께서 주신 영생의 약속을 믿고 새 언약 유월절을 소중히 지킵니다.

2013년 6월 5일 수요일

하나님은 두분이다


                    하나님은 두분이다



지구별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은 한분이시다라고 알고 있다.
또한 한분 하나님에 대해서는 남자 형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증거 하고 있지 않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은 두 분이다"라고 증거하고 있다.

성경에서 증거하는 두분 하나님 에 대해 살펴보자.

성경은 심해와 같다. 깊고 오묘한 수수께끼의 연속이다.
수수께끼는 성경 첫 장부터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우리’라는 하나님이다. 아니, ‘하나님들’이다.


구약성경의 원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성경에는 ‘하나님’이 복수명사 ‘אֱלֹהִים (엘로힘)’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들’로 해석되는 이 표현은 구약성경 39권에 걸쳐 2500회 이상 등장한다.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라는 뜻이다. ‘엘로힘’이라는 이 수수께끼 같은 단어 속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하나님들,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사람의 형상을 통해 당신을 왜 복수의 하나님으로 표현했는지 알려주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 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모델로 하여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이는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과 여성적 형상의 하나님 두 분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두 분의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이뿐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사역을 하시며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 속에서도 한 분이 아닌 두 분, 즉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성경은 온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항상 두 분의 하나님이 역사하셨음을 ‘엘로힘’과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 증거하고 있다.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1:1~7)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 6:8)

오만한 인간들의 바벨탑 건설을 중단시키시는 역사를 행하시는 분도 두 분이다. 복음을 전할 사람들을 찾으시는 분도 한 분이 아니다. 이는 구원의 역사를 이끄시는 하나님이 늘 두 분이 존재했다는 증거다
. 바로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다.
하늘 가족의 대표, 아버지 하나님
대개는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요한복음 8:41)”,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에베소서 4:5~6)” 하신 말씀을 인용하며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자세히 연구해보면 아버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뜻이지, 하나님이 유일신이기 때문에 한 분만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이 한 분이시며
아버지 하나님은 유일하게 한 분이라는 말씀이다. 다른 어떤 신도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한 분뿐”이라고 하신 것은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아니다. 오
히려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반증이다.

하나님은 분명 두 분이신데, 성경은 왜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고 표현한 것일까. 이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갖고 계시는 대표성 때문
이다.

예를 들면,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을지라도 가족의 대표인 아버지의 이름만 적어 문패를 거는 이치와 같다. 누구나 아버지의 이름이 갖는 대표성 때문에 그 집에 아버지 혼자만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어머니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늘 가족에도 이처럼 대표자이신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고 어머니 하나님이 계신다.

또 다른 예로, 아담과 하와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성경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기록되어 있다(로마서 5:12~19). 즉, 아담 한 사람이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고 죄를 지은 사람은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이었다. 죄를 지은 사람이 두 사람인데도 ‘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담이 갖는 대표성 때문이다. 이를 두고 하와는 죄를 짓지 않았
다고 해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하신 말씀을 “하나님은 한 분뿐”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성경을 단편적으로만 이해하여 곡해한 것이
다.
엘로힘, 성령과 신부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끄시는 장면은 성경 전반에 걸쳐 담겨 있다. 다음은 성경 마지막 장에 묘사된 두 분의 구원자에 대한 기록이다.

성령과 신부 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하나님께서 성령과 신부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구원을 베푸신다는 예언이다.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이다. 신부(bride)는 말 그대로 성령의 아내이니 ‘어머니 하나님’인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과 신부는
창조 시에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시며 인류를 창조하신 엘로힘, 즉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다.

어머니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시기 위해 마지막 성령시대에 이 땅에 오셨다. 잃어버린 자녀를 찾는 일은 아버지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자녀가 아버지의 사랑만 받는 것이 행복할까???
자녀가 아버지의 사랑도 받고 어머니의 사랑도 받는 것이 행복할까???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의 사랑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 받고 본향에 돌아가면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의 품안에서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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