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교회는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새언약의 안식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에 대해 잘못 오해하고 있는 올바른 정보를 통해 사람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중시하고 지키는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길 바랍니다.
안식일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계명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주간의 끝날인 제칠일을 다른 날과 구별하셨다. 그리고 그날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하셨다. 사람들도 일년 365일을 다 특별한 날로 기념하지는 않는다. 그중 아주 특별한 날들만 기억한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날로 정하신 날이 일곱째 날 안식일이다.
그렇다면 안식일은 일곱 요일 중 어떤 날에 해당할까. 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하신 안식일이 일요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안식하신 일곱째 날은 요일상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이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시간상 겨우 하루 차이지만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백성을 판가름하고 생명과 사망을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출애굽기 31:13~15).
안식일이 요일상 ‘토요일’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성경과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성경을 통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 (마가복음 16:9)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성경버전인 개역한글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안식 후 첫날’ 즉 ‘안식일 이튿날(다음 날)’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구절을 공동번역에서는 “일요일 이른 아침,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뒤 ···”라고 번역하였다.
공동번역은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 예수님의 공생애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고 후에 도입된 요일제도를 적용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한 것이다. ‘안식일 다음 날’을 가리켜 일요일이라고 하였으니, 그 전날인 안식일은 당연히 토요일이 되는 것이다.
달력을 보아도 일곱째 날이 토요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요일순으로 이루어진 달력을 보면 첫째 날은 일요일이며, 일곱째 날은 토요일이다. 국어사전에도 일요일은 ‘칠요일의 첫째 날’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토요일은 ‘일요일로부터 일곱째 날, 주말(週末)’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금성출판사, 국어사전 참고).
영어사전도 예외는 아니다. 영어사전은 ‘한 주 즉, 7일의 주기는 일요일을 시작으로 하여 토요일에 끝난다(Week: a 7-day cycle beginning on Sunday and ending on Saturday)’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 주의 시작은 일요일이고 마지막 날인 일곱째 날은 토요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일요일은 일곱째 날이 아니라 ‘한 주의 첫날(sunday: the first day of the week)’, 토요일은 ‘한 주의 일곱째 날(Saturday: the seventh day of the week)’이라고 되어 있다(Merriam Webster’s Collegiate Dictionary 참고).
성경의 안식일이 토요일이라는 것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가톨릭에서도 인정한다. 다음은 가톨릭출판사에서 발행한 ‘무엇하는 사람들인가?’라는 책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안식일(安息日)’은 쉬는 날이란 뜻인데, 하느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쉬었던 마지막 날, 즉 토요일입니다. 그래서 요즈음도 일력표에 보면 토요일이 주말로 되어 있습니다.”
가톨릭출판사에서 발행한 또 다른 책 ‘억만인의 신앙’에도 안식일이 토요일임을 밝히고 있다. “’안식’이라는 말은 ‘쉰다’는 뜻이요, 주일의 일곱째 날 곧 토요일에 해당하는 날이다. ··· 그렇지만 성서에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로 명시되어 있으니 성교회로가 아니라 성서에서부터 직접 종교를 끌어 왔다고 우기는 가톨릭이 아닌 이들도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정말 이치에 맞지 않는다.”
성경의 안식일은 일곱째 날로 요일상 토요일이다. 시대가 변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배일은 바뀌지 않는다. 창조주의 기념일인 안식일은 창세 때부터 일곱째 날이었고, 구약시대에도, 2천 년 전에도 일곱째 날이었으며,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일곱째 날이다.
2013년 9월 30일 월요일
2013년 7월 11일 목요일
성경의 증거하는 새언약안식일을 지키는 유일한교회 하나님의교회!!
성경에서는 하나님께 복받기 위해 예배드리는 날을 일곱째날 안식일로 알려주고 있다.
성경의 이런 가르침을 무시하고 오늘날의 수 많은 교회에서는 일요일 예배를 지키고 있다.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일요일 예배를 지키고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구원이 없다.
성경의 가르침대로 안식일을 2000년전의 방법 그대로 지키고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유일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교회인 것이다.
일요일 예배의 기원에 대해 살펴보자.
로마 카톨릭(천주교)의 일요일 예배는 공식적으로 321년에 시작됐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일요일 예배를 지키지 않았다. 성경에 일요일 예배에 대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요일 예배’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일요일 예배의 근원은 기원전 539년 세워진 페르시아제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페르시아인들은 원래 ‘불’을 숭배하는 민족이었다. 이들이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접하게 되면서 이곳의 여러 자연신들까지 숭배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은 이후 자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 그리스식 발음)에 의해 신학과 우주관을 갖춘 종교로 재조직됐다. 바로 ‘조로아스터교’다. 흔히 불을 숭배하는 종교라고 해서 배화교(拜火敎)라고 부른다.
조로아스터교는 ‘아후라 마즈다’를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것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그 안에는 여러 신들이 존재한다. 초기 전파 과정에서 여러 남신과 여신 등을 믿는 고대 토착 종교와 혼합되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인들은 아후라 마즈다를 최고의 신으로 꼽는 동시에, 그의 분신인 전쟁의 신이자 어둠을 몰아내는 ‘태양신’인 미트라를 열렬히 경배했다. 불에 대한 숭배가 태양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예배의식에도 잘 나타난다. 이들에게 태양과 불은 예식을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신자들은 불이 타오르는 제단 앞에서 동물이나 나무 막대기 헌주 등의 제물을 태워 바친다. 이때 생기는 불꽃과 냄새로 경배를 표현한 것이다. 이 때문에 조로아스터교인들은 가정에 화로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화로 앞에서 제사뿐 아니라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며 매일 기도를 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대상은 불이 아닌 태양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은 이 종교를 국교로 삼았던 사산 왕조의 금속주화 뒷면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들은 일요일을 태양신을 경배하는 성일로 간주했다. 일요일은 한 주간의 첫날로, 고대 바벨로니아인들이 숭배하던 태양을 비롯해 다섯 개의 별을 따라 한 주간의 각 날들에 명칭을 붙여 사용했는데, 일요일은 ‘태양(sun)의 날’에 해당했다. 이들에게 태양의 날, 태양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은 마땅한 일이었다.
미트라에 대한 경배는 페르시아를 넘어 그리스, 로마 제국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미트라는 전략적 요충지였던 소아시아 지역의 많은 로마 군인들에게 전쟁의 신으로 숭배받았다. 1세기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의 글이다.
"미트라(메흐르)교를 받아들인 첫 번째 사람들은 시실리해 인근에 살던 해적과 도둑떼였다. 이후에 이 해적들을 소탕한 로마 군인들이 미트라교를 알게 되었다. 이들은 로마제국 전역으로 미트라교를 전파했다. 이들 외에도 시리아 상인들과 군인들도 이 종교를 받아들인 그룹 중에 하나이다."
1세기경 로마 군인들이 믿기 시작한 미트라교는 이후 로마의 공식 종교가 될 정도로 그 세가 커졌다. 로마제국 전역에 미트라교의 신전인 미트라에움이 세워졌다. 특히 로마를 비롯해 누미디아, 달마티아, 브리타니아, 라인강 유역, 도나우강 유역에서 상당수 분포되었다. 급기야 미트라는 폼페이우스 황제(BC 106~48)의 동정(東征) 이후 로마제국의 수호신으로까지 격상되었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숭배했던 미트라는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 그 자리를 빼앗기는 듯 보였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신으로 믿는 기독교를 공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밀라노칙령을 내려 기독교를 공인해주었다.
표면적으로 기독교는 미트라교와의 경쟁에서 이긴 듯 보였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그와 반대였다. 유일신 하나님만을 믿으며 성경의 말씀에 따라 살았던 기독교인들은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그것은 세속화였다. 미트라교를 믿는 수많은 사람들을 유입시키기 위해서 기독교는 잡다한 이방종교의 절기와 의식을 끌어들였다. 처음에는 타의에 의해서였으나 나중에는 자의로 기독교를 변질시켜갔다. 가장 먼저 세속화된 건 예배일이었다. 321년 하나님의 주간절기인 일곱째 날 안식일이 사라지고 일요일 예배가 도입됐다. 태양신 미트라를 숭배하는 예배일, 일요일 예배가 기독교로 들어온 것이다.
321년 콘스탄틴이 일주간의 첫날을 휴일로 정했을 때 그는 그날을 “태양의 숭배일(Sunday)”이라고 명명했다. 결국 이방의 상징들이 없어졌을 때 그 불멸의 태양은 최후의 것이 되었다. (교회사 핸드북, 송광택 역, 생명의말씀사)
모든 재판관과 시민 그리고 기술자들은 존엄한 태양의 날에 쉬어야 한다. 그러나 시골 사람들은 방해받지 않고 농사일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종종 이날은 씨를 뿌리고 추수하기에 가장 알맞은 날이기 때문이다. 주후 321년 3월 7일 (콘스탄티누스의 칙령,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모든 재판관과 시민 그리고 기술자들은 존엄한 태양의 날에 쉬어야 한다. 그러나 시골 사람들은 방해받지 않고 농사일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종종 이날은 씨를 뿌리고 추수하기에 가장 알맞은 날이기 때문이다. 주후 321년 3월 7일 (콘스탄티누스의 칙령,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어떤 사람들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을 했으며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생애 마지막까지 세례받기를 보류했으며, 미트라교의 대제사장의 칭호를 유지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절기인 안식일 대신 태양신 숭배일인 일요일을 선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교회사 핸드북의 기록처럼 그가 최후까지 남기를 바랬던 신은 하나님이 아닌 ‘불멸의 태양신’이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아닌 미트라신을 숭배하는 일요일 예배를 교회로 끌어들여왔다. 그리고 일요일 예배 유입을 기점으로 하나님의 절기가 아닌, 태양신 미트라와 연관된 다양한 절기와 의식들로 교회를 채우기 시작했다. 이처럼 기독교는 교묘하게 미트라교에 의해 잠식되어갔다.
2013년 6월 24일 월요일
예수님이 친히 세우신 [하나님의교회] 2000년후에 다시 세우시다~~~
*** 이 세상에는 교회가 셀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 수많은 교회는 스스로가 옳다고 파를 만들고 당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 교회를 하나님께서 과연 기뻐하실까요?
그런 교회에 과연 구원이 있을까요?
우리 구원은 막연한 믿음으로는 절대 이뤄지지 않습니다.
2000년전에 예수님께서 구원 받을 수 있는 교회를 친히 새워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께서 친히 두번째 오시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재림예수님께서 친히 교회를 다시 세워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세우신 하나님의 교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교회 하나님의 교회>>>>>
<<<<<<재림 예수님 안상홍님이 세우신 하나님의교회>>>>>
2013년 6월 21일 금요일
*****영생 얻는 생명과를 찾아주신 안상홍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교회~~
에덴동산 이야기는
굳이 교회를 다니는 분이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알고 있는 이야기 입니다.
전개는 이렇죠.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가 살고 있었는데
뱀에 유혹에 하나님께서 먹지말라 하신 선악과를 먹었고
그 후로 인류는 죽음을 맞이 하게 되었다.
여기까지 내용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입니다.
그 러 나
이 내용이 다가 아닙니다.
에덴동산에는 선악과도 있었지만
다른성격을 지닌 또 다른 나무도 있었습니다.
바로 생 명 과
하나님의교회 생명과와 안상홍님은 진리다.
선악과는 먹기만 하면 죽지만
생명과는 먹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다 했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선악과도 있었지만
다른성격을 지닌 또 다른 나무도 있었습니다.
바로 생 명 과
하나님의교회 생명과와 안상홍님은 진리다.
선악과는 먹기만 하면 죽지만
생명과는 먹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다 했습니다.
비록 선악과로 죽기가 정해져 있지만
하나님이 허락해주시는 생명과를 찾으면 됩니다.
그럼 생명과는 무엇일까요?
또한 생명과를 찾기 위해 먼저 덴동산을 찾아야 하는 걸까요?
에덴동산을 찾지 않아도 됩니다.
생명과는 바로 안상홍님 믿는 하나님의교회에 있으니까요.
영생하는 생명과는 그 실체가 영생하는 유월절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창 3:22~24 요 6:54 마 26:26~28)
하나님의교회 생명과와 안상홍님은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과인 유월절을 안상홍님께서 가지고 오셨습니다.
하나님만이 가지고 올 수 있는
생명과를 안상홍님이 가지고 오신것은 하나님 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교회에 생명과와 안상홍님은 누가뭐라 해도 진리입니다.
2013년 6월 5일 수요일
하나님은 두분이다
하나님은 두분이다
지구별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은 한분이시다라고 알고 있다.
또한 한분 하나님에 대해서는 남자 형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증거 하고 있지 않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은 두 분이다"라고 증거하고 있다.
성경에서 증거하는 두분 하나님 에 대해 살펴보자.
성경은 심해와 같다. 깊고 오묘한 수수께끼의 연속이다.
수수께끼는 성경 첫 장부터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우리’라는 하나님이다. 아니, ‘하나님들’이다.
구약성경의 원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성경에는 ‘하나님’이 복수명사 ‘אֱלֹהִים (엘로힘)’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들’로 해석되는 이 표현은 구약성경 39권에 걸쳐 2500회 이상 등장한다.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라는 뜻이다. ‘엘로힘’이라는 이 수수께끼 같은 단어 속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하나님들,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사람의 형상을 통해 당신을 왜 복수의 하나님으로 표현했는지 알려주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 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모델로 하여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이는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과 여성적 형상의 하나님 두 분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두 분의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이뿐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사역을 하시며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 속에서도 한 분이 아닌 두 분, 즉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성경은 온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항상 두 분의 하나님이 역사하셨음을 ‘엘로힘’과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 증거하고 있다.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1:1~7)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 6:8)
오만한 인간들의 바벨탑 건설을 중단시키시는 역사를 행하시는 분도 두 분이다. 복음을 전할 사람들을 찾으시는 분도 한 분이 아니다. 이는 구원의 역사를 이끄시는 하나님이 늘 두 분이 존재했다는 증거다
. 바로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다.
하늘 가족의 대표, 아버지 하나님
대개는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요한복음 8:41)”,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에베소서 4:5~6)” 하신 말씀을 인용하며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자세히 연구해보면 아버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뜻이지, 하나님이 유일신이기 때문에 한 분만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이 한 분이시며
아버지 하나님은 유일하게 한 분이라는 말씀이다. 다른 어떤 신도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한 분뿐”이라고 하신 것은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아니다. 오
히려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반증이다.
하나님은 분명 두 분이신데, 성경은 왜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고 표현한 것일까. 이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갖고 계시는 대표성 때문
이다.
예를 들면,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을지라도 가족의 대표인 아버지의 이름만 적어 문패를 거는 이치와 같다. 누구나 아버지의 이름이 갖는 대표성 때문에 그 집에 아버지 혼자만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어머니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늘 가족에도 이처럼 대표자이신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고 어머니 하나님이 계신다.
또 다른 예로, 아담과 하와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성경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기록되어 있다(로마서 5:12~19). 즉, 아담 한 사람이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고 죄를 지은 사람은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이었다. 죄를 지은 사람이 두 사람인데도 ‘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담이 갖는 대표성 때문이다. 이를 두고 하와는 죄를 짓지 않았
다고 해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하신 말씀을 “하나님은 한 분뿐”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성경을 단편적으로만 이해하여 곡해한 것이
다.
엘로힘, 성령과 신부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끄시는 장면은 성경 전반에 걸쳐 담겨 있다. 다음은 성경 마지막 장에 묘사된 두 분의 구원자에 대한 기록이다.
성령과 신부 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하나님께서 성령과 신부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구원을 베푸신다는 예언이다.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이다. 신부(bride)는 말 그대로 성령의 아내이니 ‘어머니 하나님’인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과 신부는
창조 시에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시며 인류를 창조하신 엘로힘, 즉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다.
어머니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시기 위해 마지막 성령시대에 이 땅에 오셨다. 잃어버린 자녀를 찾는 일은 아버지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자녀가 아버지의 사랑만 받는 것이 행복할까???
자녀가 아버지의 사랑도 받고 어머니의 사랑도 받는 것이 행복할까???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의 사랑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 받고 본향에 돌아가면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의 품안에서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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