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8일 금요일

하나님의교회의 새언약안식일은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새언약이 안식일을 지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안식일을  안시일을 지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이신 안상홍님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새언약의 안식일을 지키는 하나님의 교회만이 하나님으 백성으로 인정 받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린도전서 16장 2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매주 첫날인 일요일에 연보, 즉 헌금을 했다며 구약의 안식일이 신약에는 일요일로 변경되었다고 주장한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고린도전서 16:1~2)


얼마나 일요일 예배에 대한 성경 근거가 없으면 이렇게까지 억지를 부리는지 안타깝다. 우선 위 말씀 자체가 일요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연보를 하는 예배 연보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 하였다. 만약 정기적인 예배 연보라면 사도 바울이 가는 것과 상관 없이 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은 여기 언급된 연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움을 돕기 위한 특별헌금에 대한 것이다.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고린도후서 9:1~12)


정기적인 예배 연보에 대한 말씀도 아닌 구절을 가지고 일요일 예배가 드려진 근거라고 말하는 자체가 잘못된 주장이다. 또한 이 말씀은 매주일 첫날에 예배를 드린 기록도 아니다. 오히려 매주일 첫날에는 일을 했다는 증거다.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라고 하였다. 첫날에 얻은 이익금을 저축하여 두라는 말씀이다. 첫날에 이익을 얻으려면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즉, 위 말씀은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특별헌금을 준비함에 있어서 사도 바울이 도착한 다음에야 허둥지둥 준비하기보다는 첫날 얻은 이익금을 미리 저축하는 방법으로 준비해 두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일요일 예배의 근거를 억지로 찾는 자들이 성경의 전반적인 취지를 무시하고 ‘매주일 첫날’이라는 단어와 ‘연보’라는 단어만 뽑아 읽는 이상한 독해 방식으로 ‘매주일 첫날’에 ‘연보’를 했다고 주장한다. 성경을 그렇게 이상하게 읽으니 성경에 135회(구약 80회, 신약 55회)나 기록된 안식일이 도통 보이지가 않는가 보다.

2013년 6월 26일 수요일

새언약유월절로 하나님의보호를 받는 사람들// 하나님의 교회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생중한 생명을잃어버리는 엄청난  재앙들의 소식이 무섭지요~~~~
 
인류가 살아가는 동안 쭈~욱 재앙이 없었더 적은 없었지만 요즘의 소식들은
우리가 들어오던 재앙과는 사뭇다른 무섭고 두려운 소식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소식이 들려 올때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약속을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런 무서운 재앙에서 보호를 해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시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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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언약유월절을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지키고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교회 "하나님의교회"입니다.

"하나님의교회"에서 새언약유월절을 지켜 재앙에서 보호 받는 사람들이 많기 되길 바랍니다.

새언약유월절 지키고 있는  "하나님의교회"로 오셔서  구원의 약속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2013년 6월 24일 월요일

예수님이 친히 세우신 [하나님의교회] 2000년후에 다시 세우시다~~~

 
 
 
 
 
 
 
 
*** 이 세상에는 교회가 셀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 수많은 교회는 스스로가 옳다고 파를 만들고 당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 교회를 하나님께서 과연 기뻐하실까요?
그런 교회에 과연 구원이 있을까요?
 
우리 구원은 막연한 믿음으로는 절대 이뤄지지 않습니다.
 
2000년전에 예수님께서 구원 받을 수 있는 교회를 친히 새워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께서 친히 두번째 오시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재림예수님께서 친히 교회를 다시 세워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세우신 하나님의 교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교회 하나님의 교회>>>>>
 
<<<<<<재림 예수님 안상홍님이 세우신 하나님의교회>>>>>
 
 

2013년 6월 21일 금요일

*****영생 얻는 생명과를 찾아주신 안상홍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교회~~



                                


에덴동산 이야기는
굳이 교회를 다니는 분이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알고 있는 이야기 입니다.
 
전개는 이렇죠.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가 살고 있었는데
뱀에 유혹에 하나님께서 먹지말라 하신 선악과를 먹었고
그 후로 인류는 죽음을 맞이 하게 되었다.
 
여기까지 내용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입니다.
 
그 러 나
이 내용이 다가 아닙니다.
 
에덴동산에는 선악과도 있었지만
다른성격을 지닌 또 다른 나무도 있었습니다.
바로 생 명 과
 
하나님의교회 생명과와 안상홍님은 진리다.
 
 
선악과는 먹기만 하면 죽지만
생명과는 먹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다 했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선악과도 있었지만
다른성격을 지닌 또 다른 나무도 있었습니다.
바로 생 명 과
 
하나님의교회 생명과와 안상홍님은 진리다.
 
 
선악과는 먹기만 하면 죽지만
생명과는 먹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다 했습니다.
 
비록 선악과로 죽기가 정해져 있지만
하나님이 허락해주시는 생명과를 찾으면 됩니다.
 
그럼 생명과는 무엇일까요?
또한 생명과를 찾기 위해 먼저 덴동산을 찾아야 하는 걸까요?
 
에덴동산을 찾지 않아도 됩니다.
생명과는 바로 안상홍님 믿는 하나님의교회에 있으니까요.
 
영생하는 생명과는 그 실체가 영생하는 유월절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창 3:22~24  요 6:54  마 26:26~28)
 
하나님의교회 생명과와 안상홍님은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과인 유월절을 안상홍님께서 가지고 오셨습니다.
 
하나님만이 가지고 올 수 있는
생명과를 안상홍님이 가지고 오신것은 하나님 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교회에 생명과와 안상홍님은 누가뭐라 해도 진리입니다.





2013년 6월 19일 수요일

///죽은 사람의 시체를 모으는 등골이 오싹해 지는 교회의 정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카톨릭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 정통성을 가진 교회라고......
또한 거룩한 곳이라고........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러움을 회칠해놓고 가증스럽게 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있음을 알아 볼 수 있다.


만약 당신의 집에서 부패되어 썩은 사람의 시체가 발견됐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생각만으로도 오금이 저리고 등골이 오싹해질 것이다. 그런데 죽은 사람의 시체를 일부러 모으는 교회가 있다. 시체가 많으면 많을수록 큰 영광으로 생각하는 그 교회는 바로 ‘가톨릭’이다.
 
 


가톨릭은 교황 혹은 성인의 시체를 교회 안에 보존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실제 바티칸 베드로 성당에는 해골 모습을 한 교황의 시체가 이곳저곳에 전시되어 있다. 눈만 돌리면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다. 이태리 산 마르코 성당에는 죽은 마가의 시체가, 성 프란체스코 성당에는 죽은 프란체스코의 시체가, 독일 퀼른 성당에는 죽은 동방박사들의 시체가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가톨릭은 시체 위에 세워진 교회가 틀림없다.


가톨릭은 급기야 사람의 뼈로 교회를 장식하기에 이르렀다. 사형수들의 유골을 안장해 놓은 이탈리아 로마의 해골사원과, 4만 명의 사람 뼈로 성당 내부를 장식한 체코의 코스트니체 세드렉 성당이 대표적이다. 특히 해골 성당으로 더 잘 알려진 코스트니체 세드렉 성당에는 입구부터 사람의 뼈로 만들어진 십자가가 장식되어 있어 음산한 분위기가 감돈다. 더욱이 예배당 위에는 2.4m 길이로 해골들이 매달려 있으며 아래에는 무수히 많은 해골 탑들이 쌓여있다. 영생을 기원하며 쌓았다고 전해진다. 한눈에 봐도 교회라기보다 공동묘지를 연상케 한다.


한번 상상해 보라. 당신이 다니고 있는 교회에 시체들과 해골들이 여기저기 즐비해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그곳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나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사람의 시체나 유골이 교회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은 오싹한 일인데 왜 가톨릭은 이러한 것에 집착을 하는 것일까.


『천주교는 죽은 자의 유골 특히 성인이라고 칭하는 자들의 해골과 유품을 숭배합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그 유물들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많은 은혜를 내리시므로 신자들은 그것을 공경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천주교를 배격하는 7가지 이유 [할렐루야서원]-』


지금도 수많은 참배객들은 가톨릭의 이런 가르침대로 죽은 교황의 시체나 성인들의 해골 앞에서 축복을 구하는 기도를 하고 있다. 과연 죽은 자들의 시체와 해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슨 은혜를 내리신다는 말일까.


···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이사야 8:19)


분명한 것은 성경은 죽은 자들과 교통하려는 행위를 꾸짖고 있으며 거기에 어떠한 은혜도 없다는 것이다.

2013년 6월 18일 화요일

하나님의교회는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정통성을 지닌교회입니다~!!!



"원조"라는 말을  아시죠???
오늘날 수많은 교회 중 "원조"교회는 어느 교회일까요??

제각기 성경의 말슴을 따르고 있고 구원이 있다고 자랑하고 있는 교회들이 마치 서로들 원조라고 써붙여 놓은 식당들 같습니다.

그러나 그 중 단하나의 "원조"는 있겠지요....

교회도 서로가 주장한다 할지라고 유일한 "원조교회"는 유일하게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시고  친히 이끌어 가시는 유일한 구원이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만이 유일합니다.

부지런히 연구하고 상고 한다면 누구나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정통교회라는 것을..........

이 땅의 수 많은 교회중에 구원의 약속이 있는 유일한 교회인 하나님의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또한 2000년전의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새언약 복음을 유일하게 실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준행하고 지킥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구원 받을 수 있기를 힘쓰기를 바랍니다.


                                                          http://youtu.be/rW2Y0kD3ESs

2013년 6월 17일 월요일

이단을 정확히 판단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하나님이 정통으로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교회!!!




보통의 사람들은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고자 합니다.
그러나 다수의 의견이라고 해서 모두가 옳은 진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

"빨간색 안경을  낀 사람들이 다수이고 파란색 안경을 낀 사람이 소수라 하자."
누가 보는 세상이 옳다고 할 수 있을까요??

모두의 안경을 벗고 세상을 보게 되면 그제야 올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많은 사람들은 이단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를 이단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그렇게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을까요?

스스로들은  연합하여 다수를 만들고 하나님의 교회를 이단이라고 결정하여 판단하고 그렇게 전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누가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던가요???
이단과 정통을 판단하고 구원을  정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중심으로 판단하여 이단이 과연 무엇인지 분별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성경이 증거하고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하나님의 교회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http://youtu.be/bKkBm0TwQgU

******하나님의 교회에서 구원의 소망을 키워 가길 바랍니다**************************

2013년 6월 14일 금요일

하나님께 축복 받는 올바른 예배는??? [안상홍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교회에서만이 ......]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하늘에서 죄를 짓고 쫒겨온 죄인들입니다.
그렇기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만 죄사함을 얻을 수 있고 다시 천국에 갈 수 있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죄사함을 간구하고 축복을 받아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기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가장 중대한 의무 중 하나를 꼽으라 한다면 바로 예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각 교단에 따라 예배일이 다르다. 이를 크게 나누어 보면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교단과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교단이 있다. 과연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어느 날에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교리비교를 통해 알아보자.
일요일 예배
① 근거
 일요일 예배를 드리는 자들의 주장 중 가장 많은 교인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 ‘부활과 성령 강림이 이루어진 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에 일요일에 예배한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성경에 없다. 성경 어디에도 ‘부활과 성령 강림이 일요일에 있었으니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신 구절이 없다. 이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인 부활절은 일요일이 맞다. 예수님께서 이른비 성령을 내려주신 오순절도 일요일이다. 그래서 일요일에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합리화를 위해 이 모든 날들을 증거로 들면서 일요일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주마다 지켜야 하는 예배일은 연중에 지키는 예배일과는 다르다. 이는 마치 광복절과 삼일절에 모두 만세운동을 했으니 두 기념일을 합쳐 주마다 기념일을 만들어 지키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주장으로는 ‘초대교회가 일요일에 예배하고 연보했다’는 증거로 고린도전서 16장 2절 말씀을 내밀고 있다.

매 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고린도전서 16:2)

매 주일 첫날은 일요일이다. 일요일 예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 구절을 들고서 ‘초대교회 사도들도 일요일에 예배를 드렸다’라고 하는 것은 앞뒤 문맥을 이해 못하는 무지의 소치다. 만약 이 구절을 일요일 예배와 연관시키려면 ‘연보를 하게 하라’로 성경 말씀을 바꾸어야 한다. 이 말씀의 정황은 바로 뒤에 나오는 3절 말씀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고린도전서 16:3)

이 연보는 매주 드리는 예배의 연보가 아닌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특별헌금이다. 게다가 ‘일요일에 이익을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라’고 하신 것은 오히려 첫날에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일요일에 일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일요일 예배 성수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없다. 성경에서는 일요일에 예배를 드렸다는 증거를 어디에서도 살펴볼 수 없다. 일요일 예배에 대한 근거는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만 그 자료를 찾을 수 있다.

교회사(이건사 발행, 송낙원 지음) 101쪽, ‘제2기 사도 후 시대(100-313년)’의 내용을 살펴보면 ‘예배의 시기로는 주(週) 예배로서 안식일 예배가 이 시기까지 계속되었으나, 말기에 점차로 주의 첫날 즉 일요일로 대용케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다른 교회사(세종문화사 발행, 김의환 박사 감수) 145쪽에는 ‘콘스탄틴 대제는 처음으로 칙령을 내려 일요일에 정무와 사법의 일을 쉬게 하고 이어서 이날에는 군대의 조련, 공연물의 관람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구약의 안식일의 제도를 그대로 옮기려고 하지는 않았다. 동방에 있어서는 토요일을 안식일로서 지켰다’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처럼 일요일 예배는 AD 150년경부터 그리스도인들이 이교도화되면서 점차 교회에 들어왔다. 그러므로 일요일 예배를 지키는 자들은 어떻게든 성경과 연관 짓기 위해 여러 가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

② 교단
 일요일 예배를 드리는 교단들에는 대표적으로 천주교가 있으며 개신교 5대 교파와 여호와의증인,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몰몬교), 통일교, 신천지 등이 있다.

③ 결론
 일요일 예배는 2세기경 로마교회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예배일을 일요일로 변경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핍박받던 기독교의 역사적 배경과 유대인과의 마찰, 로마의 정세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해 일요일 예배가 정착화됐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에는 일요일 예배에 대한 명백한 구절을 찾아볼 수 없다(교부들의 신앙 61쪽, 카톨릭출판사)”는 것이다.
안식일 예배
① 근거
 안식일 예배의 근거는 성경이다. 하나님께서 육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 안식하신 것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인 안식일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지키라 하셨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세기 2:1~3)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애굽기 20:8~11)

일곱째 날 안식일은 오늘날의 요일제도에서는 토요일에 해당하며 구약시대부터 신약시대에 이르기까지 수세기 동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통해 지켜져 왔다. 신구약 성경에서는 135개의 구절 속에서 안식일을 언급하며 기억해 지키라고 기록하고 있다.

② 교단
 토요일에 안식일을 지키는 교단으로는 전 세계 두 개의 교단이 있다. 먼저는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이며 또 다른 교단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다. 하지만 안식교는 이른바 ‘일몰설’을 주장하며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지키고 있어 이 또한 온전히 안식일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일몰설은 성경을 그릇되게 해석하므로 나타난 주장이다. 그러므로 전 세계를 통틀어 오로지 성경대로 안식일을 지키는 교단은 하나님의교회가 유일하다.

③ 결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는 본을 보여주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성도라면 누구든지 안식일을 지켜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15)

사람의 어떤 생각도, 사람의 어떤 변명도, 사람들의 어떤 자기 합리화도 하나님의 계명을 뛰어 넘을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계명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 의무다.

2013년 6월 13일 목요일

하나님께 나아가는 첫걸음~~ [침례] // 성경의 가르침대로 행하는 유일한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뿐!!!

                                                     하나님의 첫 번째 선물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자 하나님께 나아가는 첫번째 발걸음은 무엇일까?
"침례" 가 바로 첫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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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첫발걸음은 언제 시작하여야 할까?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를 제외하고는 많은 교회에서 침례를 받기까지 자기들만이 정한 규정에 따른 절차를 다 치른 후에 받게 하고 있다.
그런 그들의 가르침이 과연 성경적일까?
하나님께 나아가는 첫 발걸음부터 잘못 걸어간다면 그길의 결말은 멸망에 이르는 길이 된다.
그러니 첫 걸음이 너무도 중요하다.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그의 저서 '로마제국 쇠망사'에 이렇게 적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던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가 이 시대에 바티칸(로마 교황청)을 방문한다면 이처럼 장엄한 사원에서 그처럼 신비로운 의식으로 숭배받는 신의 이름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을 것이다. 그리고 바울이나 베드로가 옥스퍼드나 제네바(개신교 교리를 가르치는 신학교)에 가게 된다면 교리 문답서를 새로 외우고 또 그들의 주님에
관한 정통파 주석가들의 해석을 새로 공부해야만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될 것이다."

'로마제국 쇠망사'라는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십수 년 동안 유럽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던 역사가의 말을 빌어보건대 지금의 기독교는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배우고 가르쳤던
진리들과는 전혀 다른 것들로 바뀌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출처[History Channel 'The bible']

이러다 보니 오늘날에는 예수님과 사도들이 본을 보이시며 가르치셨던 진리의 말씀대로 행하면 오히려 이상히 여기고 이단시하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단
이라고 한다면 정말 곤란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한 가르침을 주신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예수님을 이
단이라고 정죄하는 모순을 낳고 있는 것이다.

세례, 즉 침례에 대해서도 많은 교회에서 잘못 이해하고 판단하고 있는 진리 가운데 하나다.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어느 것 하나 우리의 구원과 상관없는 것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모두 다 자녀들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는 생명의 진리다.

종교개혁 이후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강조하다 보니 침례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예식으로 받아들이는 교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하나
님의 자녀로 거듭나 구원을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 있어 침례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마가복음 16:16)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
이라 (베드로전서 3:21)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으라 (사도행전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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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에게 죄를 용서받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 침례는 죄를 씻어내며 구원을 선물로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나님을 만나 받게 되는 첫 번째 선물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첫번째 선물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바로 받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주어진 기회를 잃어 버린다면 다시 기회가 얻어질수 있게 될지 아무도 장담 할 수 없는 것이다.

가르침을 따라 가르침 그대로 주어진 축복을 바로 원하는 모든 이게게 값없이 주는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유일하다.

2013년 6월 12일 수요일

하나님의 교회만이 구원이 있는 이유는 ???? [유월절]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베드로전서 1:9 )

영혼의 구원은 바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알아야만 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디모데전서 6:15~16)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생의 약속이 유월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예수님)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예수님)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 음료로다 (요한복음 6:53~55)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먹는 떡을 예수님의 살로, 유월절에 마시는 포도주를 예수님의 피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대로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유월절 떡)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유월절 포도주)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9~28)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 영생한다’ 하신 말씀에 따라 유월절을 지키는 자가 영생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반대로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하셨으니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다면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예수님께서 주신 영생의 약속을 믿고 새 언약 유월절을 소중히 지킵니다.

2013년 6월 10일 월요일

여성도들의 머리수건에 대한 하나님의 교회의 가르침은?????

거룩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도 사람들의 마음대로 드려서는 아니된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교회 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하나도 거스르지 않고 다 지키고 있다.
예배 때 남자와 여자는 예배보는 방법이 구분되어 있다.
여성도들은 머리를 가리고 남자 성도들은 머리를 절대 가려서는 아니된다.
그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살펴보고 오늘날 하나님의교회 가 아닌 다른 교회의 예배보는 방법이 잘못 되었음을 확인해보자.
사도 바울의 당부

고린도전서는 사도 중의 사도라 일컫는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다. 이 편지에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도로서 갖춰야 할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린도전서 1:1~3)

55년경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인사말을 시작으로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에게 긴 편지를 보냈다. 바울은 생애 동안 3차에 걸쳐 전도여행을 한 바 있는데, 이 편지를 쓴 것은 터키 남서쪽 해안에 위치한 에베소에서 3차 전도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간에 분쟁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로 추정된다(고린도전서 1:11).

고린도는 수년 전 2차 전도여행을 했던 곳이다. 교통수단이 변변치 않았던 당시로서는 아주 멀고도 험한 여정이었을 텐데도 결국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의 정점을 찍은 곳은 고린도였다.

당시 고린도는 그리스(헬라)의 대표적인 항구도시로 상업과 무역이 발달한 국제적 중심지였다. 반면 부도덕한 도시로도 유명했다. 이 도시에는 사랑의 여신이라 불리는 아프로디테를 숭배하는 거대한 사원이 있었는데, 이 사원에서 천 명가량의 여사제들이 매음을 행했다고 전해진다. 또,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도시 인구는 다양한 민족들이 섞여 있었다. 따라서 다양한 이방신 숭배사상이 유입되었고, 사람들의 삶은 배금주의와 향락주의에 젖어 있었다.

고린도 하나님의교회의 구성원 역시 이방인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신앙적으로, 도덕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일부 성도들로 인해 혼란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바울로서는 믿음이 약한 성도들이 퇴폐한 사회풍조와 헬라철학의 잡설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 퍽 염려스러웠을 것이다. 그의 편지에는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1장부터 10장까지 읽어보면,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각인시키며, 음행의 죄를 꾸짖고, 결혼에 대한 교훈과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를 함으로써 거룩한 성도로서의 본분을 가르치고 있다. 바울은 그 다음으로 11장에서는 강력하고 절실하게 어떤 문제를 다루고 있다.

비레타[biretta] 로마 가톨릭교회 성직자들이 착용하던 각진 모자
  비레타[biretta] 로마 가톨릭교회 성직자들이 착용하던 각진 모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고린도전서 11:1~3)

바울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바울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무슨 이야기를 꺼내고자 이렇게 조심스러울까. 선뜻 본론을 언급하지 못하고 고린도교회를 칭찬하며 꺼낸 이야기는 바로 다음 구절에 나타난다.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고린도전서 11:3~5)

요약하자면 예배나 기도드릴 때 남자는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말고,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쓰라는 말이다. 이 규례는 바울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다.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여성도는 머리수건을 쓰는 것, 남성도는 쓰지 않는 것. 어려운 규례가 아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반복적으로 혹은 역설적으로 여성도의 머리수건 규례를 언급하고 있다. 꼭 지켜져야 할 그리스도의 가르침인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아닌 양 치부해버릴까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많은 교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느 교회에서도 올바로 머리수건 규례를 지키는 곳이 없다. 여성도가 머리수건을 쓰는 천주교도 남자인 사제가 비레타(biretta, 각진 모자), 주케토(zucchetto, 이탈리아어로 ‘작은 바가지’라는 뜻으로 둥근 모자) 등을 쓰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는 어긋난다.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고 축복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배 시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거나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욕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바울은 역설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고 싶었던 바울의 당부는 오직 한 가지, 거룩함을 덧입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었다.

2013년 6월 7일 금요일

구원의 신호를 제대로 알아야~~~~[줄탁동시]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노라하며 구원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생각과 방법은 무시한채 자신의 생각으로 구원을 말한다.


줄탁동시(?啄同時).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오기 위해 껍질 안에서 쪼는 것을 ‘줄’이라고 하고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을 ‘탁’이라 한다. 이 두 가지 작업이 동시에 이뤄질 때 병아리는 비로소 세상으로 나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병아리가, 어미 닭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어미 닭은 안에서 알을 쪼는 병아리의 신호를 듣고서야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구원받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원을 받고자 한다면 그에 맞는 적절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 성경에 기록된 신호는 죄 사함 받는 방법인 ‘유월절’과 구원에 이르기 위한 축복을 받는 방법인 ‘안식일’ 등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구원을 달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일요일 예배,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 등 사람의 계명으로 신호를 보내면서 구원해달라고 외치는 저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떤 응답을 하실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1~23)

 우리의 구원을 향한 간절한 외침과 하나님의 도우심의 작업이 동시에 이뤄질수 있어야만 우리는 지구별을 깨고 천국을 향해 갈 수 있는 것이다.

"줄탁동시"의 구원이 이루지고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 셰계복음선교협회가 유일하다.

2013년 6월 5일 수요일

하나님은 두분이다


                    하나님은 두분이다



지구별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은 한분이시다라고 알고 있다.
또한 한분 하나님에 대해서는 남자 형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증거 하고 있지 않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은 두 분이다"라고 증거하고 있다.

성경에서 증거하는 두분 하나님 에 대해 살펴보자.

성경은 심해와 같다. 깊고 오묘한 수수께끼의 연속이다.
수수께끼는 성경 첫 장부터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우리’라는 하나님이다. 아니, ‘하나님들’이다.


구약성경의 원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성경에는 ‘하나님’이 복수명사 ‘אֱלֹהִים (엘로힘)’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들’로 해석되는 이 표현은 구약성경 39권에 걸쳐 2500회 이상 등장한다.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라는 뜻이다. ‘엘로힘’이라는 이 수수께끼 같은 단어 속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하나님들,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사람의 형상을 통해 당신을 왜 복수의 하나님으로 표현했는지 알려주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 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모델로 하여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이는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과 여성적 형상의 하나님 두 분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두 분의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이뿐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사역을 하시며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 속에서도 한 분이 아닌 두 분, 즉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성경은 온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항상 두 분의 하나님이 역사하셨음을 ‘엘로힘’과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 증거하고 있다.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1:1~7)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 6:8)

오만한 인간들의 바벨탑 건설을 중단시키시는 역사를 행하시는 분도 두 분이다. 복음을 전할 사람들을 찾으시는 분도 한 분이 아니다. 이는 구원의 역사를 이끄시는 하나님이 늘 두 분이 존재했다는 증거다
. 바로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다.
하늘 가족의 대표, 아버지 하나님
대개는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요한복음 8:41)”,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에베소서 4:5~6)” 하신 말씀을 인용하며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자세히 연구해보면 아버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뜻이지, 하나님이 유일신이기 때문에 한 분만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이 한 분이시며
아버지 하나님은 유일하게 한 분이라는 말씀이다. 다른 어떤 신도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한 분뿐”이라고 하신 것은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아니다. 오
히려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반증이다.

하나님은 분명 두 분이신데, 성경은 왜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고 표현한 것일까. 이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갖고 계시는 대표성 때문
이다.

예를 들면,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을지라도 가족의 대표인 아버지의 이름만 적어 문패를 거는 이치와 같다. 누구나 아버지의 이름이 갖는 대표성 때문에 그 집에 아버지 혼자만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어머니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늘 가족에도 이처럼 대표자이신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고 어머니 하나님이 계신다.

또 다른 예로, 아담과 하와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성경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기록되어 있다(로마서 5:12~19). 즉, 아담 한 사람이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고 죄를 지은 사람은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이었다. 죄를 지은 사람이 두 사람인데도 ‘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담이 갖는 대표성 때문이다. 이를 두고 하와는 죄를 짓지 않았
다고 해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하신 말씀을 “하나님은 한 분뿐”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성경을 단편적으로만 이해하여 곡해한 것이
다.
엘로힘, 성령과 신부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끄시는 장면은 성경 전반에 걸쳐 담겨 있다. 다음은 성경 마지막 장에 묘사된 두 분의 구원자에 대한 기록이다.

성령과 신부 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하나님께서 성령과 신부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구원을 베푸신다는 예언이다.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이다. 신부(bride)는 말 그대로 성령의 아내이니 ‘어머니 하나님’인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과 신부는
창조 시에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시며 인류를 창조하신 엘로힘, 즉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다.

어머니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시기 위해 마지막 성령시대에 이 땅에 오셨다. 잃어버린 자녀를 찾는 일은 아버지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자녀가 아버지의 사랑만 받는 것이 행복할까???
자녀가 아버지의 사랑도 받고 어머니의 사랑도 받는 것이 행복할까???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의 사랑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 받고 본향에 돌아가면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의 품안에서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